치료실 17

매드 맥스, 조지 밀러

폭염과 요통으로 고통받던 제게 선물을 투척했습니다. 허리를 삐끗한 뒤로 다니던 병원, 수영장 말고 DVD방! 일하다가 결국 극장관람을 놓친 매드 맥스, 누워서 보기!! 초대형 블록버스터 보다가 졸기 일쑤여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와... 혼자 막 소리 지르고 봤네요. 오랜만에 두근두근한 영화를 보고 공책에 기억나는 대로 그려댔는데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해서 손 떨며 그렸어요. ps. 그림 의뢰가 들어올 때 이렇게까지 그리지는 않습니다. 정말로요. ps2. 다시 보니 임모탄과 제가 닮았네요. 대체 왜...... ps3. 무엇이 왜 그토록 좋았는지 짬이 나면 글로도 쓰고 싶어요.

치료실 2023.09.11

Side B, 최근성

좋은 소설은 서사도, 반서사도 무화시키며 단단한 현실을 자신의 문법으로 뚫고 나가려는 우습고 슬픈 싸움이다._김태용 오해하기가 쉬운 소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과도한 데다 비효과적인 언어유희에 눈썹을 긁었고, 뒤이어 시와 설명이 뒤죽박죽 엉겨있는 문단들에 놀랐죠. 작가의 정체성과 작가가 택한 형식이 엄청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가 누구와 왜 싸우는지 잘 보이지 않았어요. 말하자면 스타크래프트 화면을 처음 맞닥뜨린 사람처럼 이 소설을 읽기 힘들었던 거죠. 이 작가는 왜 이걸 노래나 시나 희곡으로 드러내지 않은 거지? 그림, 사진, 무용 같은 채널로 대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이 자세로 아무 무기도 없이, 소설과 비평이라는 불리하고 고되고 지루한 전쟁터에 나와 있는 거지? 주체에 대한 ..

치료실 2023.09.11

소녀들의 심리학, 레이첼 시먼스

아무런 준비 없이 밤의 모란시장을 걷는 게 아니었다. 주차장 공터 한복판에 들어왔을 때에야 오른쪽 상가변의 철창과 자루가 눈에 띄고 개들이 앓는 소리가 들렸다. 좁은 쇠창살 안에 아무렇게나 우겨진 그들의 모습은 보자마자 단념하게 되는 어떤 참담 그 자체여서 더 이상 그쪽을 바라보기가 힘겨웠다. 아스팔트는 영원히 이어질 듯 길었다. 나는 시력이 몹시 안 좋았던, 안경을 맞출 돈이 없었던, 그래서 학창 시절부터 죽는 날까지 세상으로부터 내내 떨어져 나왔던 어떤 사람을 생각했다. 마지막 일자리라 생각한 공장에서도 역시 시력 문제로 쫓겨난 그는, 결국 이 새까만 공터만큼 넓었던 여의도 광장에서 훔친 차를 몰고 햇빛 아래 웃는 사람들을 향해 돌진해 버렸다. 한 번을 짖지 못하는 개의 공포와 불안을 이제 와서 어느..

치료실 2023.09.11

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거리의 피터팬들 흔히 한 작가의 청년기 초기작을 그의 최고작품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 생물학적 기력이 쇠한 작가들이 종종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산으로 들어가거나 신에게 의지해버리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역시 좋아하는 작가의 최근작을 의리로 구입해 마음이 쓰라린 적이 적지 않다. 이 소설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가 60세에 쓴 작업물이다. 이순(공자 왈, 예순 살부터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고 하심)이라는 시기에 비해 딱히 지혜롭거나 따스하지는 않은 책이다. 그렇지만 1964년, 60세의 그는 내가 아는 어떤 청년작가들보다 젊고 예민한 글을 썼다.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학급문집이나 학급신문을 내는 교사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 *신문..

치료실 2023.09.10

피로사회, 한병철

Les non dupes errent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_라캉 근대여, 안녕 _모던타임스의 마지막 장면 영화가 끝나고 난 뒤 그들은 어디로 걸어갔을까. 그리고 무엇을 보았을까. 그림자를 끌고 가는 뒷모습에서는 조금쯤 가난하고 따뜻한 냄새가 난다. 막막하고 아득해 보이는 길은 금세 어둠과 피로를 불러들이고 이들은 곧 모랫길에 주저앉아 다 부서져버린 크로와상과 설탕맛 포도주를 맛보고 있을 것만 같다. 그저 아무 일 없이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근대 역시 다른 방식으로 무참히 괴로웠지만, 아무리 관대하게 봐주어도 오늘날의 피로는 완전한 포화상태이다. 그것은 도저히 정답게 녹슨 형상으로 보이질 않는다. 지금의 피로는 틈과 무용성이 없는, 다만 무심으로 이뤄진 주사위 모양과 가깝다. 저자는 지금의 개개..

치료실 2023.09.10

달력 그림

어머니가 재택근무로 이런저런 소일거리를 했던 20여 년 전, 나는 어린 엄마가 잠시 한 눈을 팔면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뜨거운 수제비통에 발을 담그는 등 식겁할 일을 만들어내는 유아였어. 어머니는 어느 날부터 달력을 주워왔고 나는 언젠가부터 달력 뒷면에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 어렸을 때부터 예쁜 여자를 지치지도 않고 그렸어. 지금은 뒤틀리고 음습한 인물만을 그리고 있지만 오랜만에 멀쩡한 사람의 얼굴을 그리다 보니 아주 오래전,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마음을 다해 숨죽여 골똘하게 그려가던 시간이 생각난다. 추리소설 읽다가 그린 여자, 범인일 것 같았는데 범인이었던 여자. ps. http://musicovery.com/ Musicovery B2B on Strikingly ..

치료실 2023.09.10

유기농 관계

유기농 관계 26세까지 그는 기타 줄을 퉁겼다 매달의 임금은 76만 원 주말에는 짜장면에 탕수육 소(小) 자와 이과두주를 주문했다 일요일 아침 식은 탕수육을 같이 먹는 여자가 생겼다 그 여자는 고기와 담배를 좋아했다 등짝엔 검은 피지가 많았다 그는 여자가 길어오는 악몽에 매일 젖었다 삶은 밤가루 같은 귀지가 가득 찬 남자가 소리쳤다 젊은 놈은 더 먹고 늙은 놈은 덜 먹고 어떤 늙은 놈은 매우 잘 먹는다 꿈속에서 그 말은 잠언처럼 들렸다 그는 다음 악몽을 넘겼다 김 군이 이렇게 성공해 주었다니 이 노구는 대단히 고마울 뿐입니다 이즈음의 쇠고기는 비싸기 그지없는데 이런 요리를 사주시다니 그것 또한 고맙습니다 김 군에게 고맙습니다 그의 죽은 숙모가 복화술로 이야기했다 그는 어머니의 음성을 들은 지 오래되었다고..

치료실 2023.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