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실

88

접골 2023. 9. 10. 03:01

아버지는 어머니가 할머니를 만나러 가고 없을 때면 돈까스를 사주곤 했다. 
부드럽게 찢어지는 빵과 다디단 딸기잼이 나오는 경양식집이었다.
제대로 된 고깃덩어리를 삼키고 싶은 나는 정식이 부럽지만 언제나 돈까스를 골랐다.
(정식에는 함박스테이크, 돈까스, 비후까스 세 덩어리가 작은 크기로 나왔다.)

그곳에서는 잘 먹지 않던 당근까지 남기지 않고 먹었다.
익힌 당근의 색은 곱고 예쁜 데다가 아주 작고 따뜻했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는 까치단위로 파는 담배를 사서
하늘과 도로 사이의 어딘가를 쳐다보며 서 있었다.

동네로 종종 관광 말이 들어왔다.
말이 한번 오줌을 싸면 골목길 전체가 젖었다.
누구도 말의 표정을 읽지 않고 말 등 위로 올라탔다.
말이 오랜 간 보이지 않은 후로 플라스틱 리어카 말이 들어왔다.

ps.
1. 그림이며 글이며 현재는 스트레칭 중.
심신을 정비하여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2. 80년대에 대해 왜 자꾸 말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올림픽이 치러졌던 88년의 한국은 정답고 잔인하고, 반짝이고 어두운 곳이었다.
폭력과 굴종이 선명한 색으로 드러나도 뿌연 전체 그림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던 나날.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를 들으면 그래서 혼란스럽다.
성실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그 영상에는 분명히 있으니까.
하지만 그 풍경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생각하면 막막.
작업을 하면서 의문이 더욱 늘어났으면 좋겠다.

3. 너의 88년은 어떤 모습이니. 기억을 들려줘요.

'치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기농 관계  (0) 2023.09.10
코끼리가 탄 트럭  (0) 2023.09.10
홀든 콜필드에게  (0) 2023.09.10
후회  (0) 2023.09.10
401번의 구타  (0) 2023.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