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에 가서 짜장면(자장면 X)을 먹고 오기! 그게 오늘의 숙제
소림사 무술권법으로 수타면을 뽑아내는 남자를 찾아서
견출지에 제일 작게 적힌, 제일 싼 메뉴를 소신껏 주문하기
면을 다 씹기도 전에 테이블로 걸레가 날아와도 점원과 싸우지 않기
현금이 없으니 카드의 마그네틱선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하기
1호선에 올라 아침부터 슬픈 사람들을 통과하기
불에 잘 타는 소재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만화책을 펼치기
검은 들깨 엿을 녹여 먹으면서 졸음을 물리치기
차이나타운 문화의 거리에서 500원짜리 사진을 찍기
비록 출력은 안되지만 천안문을 배경으로 선택할 수 있음
식사를 마친 후에는 요구르트 한 줄을 사서 햇볕으로 가기
공원을 한 바퀴 돌고 경인상사에서 만든 운동기구를 타기
손뼉 소리가 희미한 할아버지를 너무 오래 쳐다보지 말기
누군가에게 지금 인천의 자유공원이야,라고 고백하기
미리 컵에 넣어 짜부되어 버린 솜사탕을 구입하진 말기
해가 지면 다시 술이 손짓하니 지하철에서 급히 헤어질 것
ps.
이 영화가 시작이었지. 월미도로 향하는 아이들.
화면이 너무 환할 때 나는 더 떨렸어.
ps2.
홍대로 돌아와 너와 나를 일기장에 그렸어.
인천냄새와 웃음소리가 금방 휘발될 것 같아 숨도 조심히 내쉬고 싶었다.
검고 낡은 내 코트에는 햇빛, 먼지, 공원, 짜장면, 만화책, 담배, 먼바다 향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어. 그게 다 섞이면 돌아가신 외할머니 체취
(은하수인지 새마을인지 제비꽃인지 할머니는 볕이 좋은 날 거실에서
담배 한 대를 담담히 피셨어. 꼭 오래 산 사람의 표정을 짓고 말이지.)
그리고 이유 없이 무리하게 뛰어다니다 귀가한 어린이 냄새가 풍겨.
우리는 조금쯤 어린이들 같았어(짜장면을 먹기 위해 새벽알람을 맞춘 게).
또 조금쯤 외할머니들 같았어(할 일을 다 마친 시간이 볕 좋은 봄, 월요일 정오인 게).
그러고 보니 너와 내게 가장 안 어울리는 단어는 아마도 아가씨 아닐까.
한 번도 못 가본 그곳이 어쩐지 좋았는데 네 덕에 그곳이 정말로 좋아졌어.
다음엔 비가 억수로 많이 올 때 대공원에 가. 디스코가 팡팡 큰 웃음이 펑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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