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_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 중
이곳에서 많은 것이 부풀었다가 사그라들었다. 절차는 언제고 비슷했다.
비닐과 스티로폼이 굴러다니는 작업실은 천진하고 아름다웠지만 캄캄한
바람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캄캄한 공기를 많이 마시면 폐가 나빠진다고
죽은 사람이 말해주었다. 봄비가 표독스럽게 내렸다.
언 배를 타고 하염없이 같은 곳을 맴돌고 있어. 현기증이 나.
단단하고 딱딱한 것을 줄 수 없니. 나는 나에게 권유한다.
그런 것이 있긴 하지. 청산가리와 꽃나무와 삼치.
일기장엔 괴이한 문답이 쌓여가고 봄은 겨울보다 추워진다.
동전으로 담배 값을 한참 동안 모으다 누군가 소리쳤다.
너무 추워. 너무 춥다고. 너는 이 추위가 안 느껴져?
누군가는 ㅁ으로 누군가는 ㅇ으로 방향을 정했다.
너와 나는 이곳을 빈 집으로 만들자 언약했다.
벽에 기댄 기타가 심한 농담처럼 보였다.
끝끝내 고백하지 않던 그 복학생처럼.
바람은 왜 바람을, 구름은 왜 구름을 몰고 올까.
가난은 왜 가난을, 죄는 왜 죄를 데리고 올까.
그리고 왜 그렇게 친근하게 훼손된 낯빛일까.
자전거를 타던 우리는 돌연 갈라선다.
비료포대자루가 하늘을 표연하게 날고 있었다.
그 궤적은 검고 늠름했다. 크고 의젓했다.
문을 열 때마다 이상하게 문밖이 더 따뜻했다.
몸도 길지 않은데 내 피는 손발 끝까지 왜 다 못 돌고 돌아오지.
너는 심하게 빠른 속도로 페달을 밟는다.
나는 그제야 너를 이해할 것 같았지만
어떤 장은 도무지 넘어가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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