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없이 여름을 났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부엌을 돌며 감자와 팥과 오리를 삶았다.
나는 집에서 나갈 줄을 몰랐다. 뒤늦게, 짧게 자른 머리카락이 폭서의 큰 요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거울을 보니 뒷목과 이마를 검은 머리가 수북이 덮고 있었다. 더위가 끝물에
이르러서야 도서관이 피난처의 꽃이자 성지임을 깨달았다. 냉각기 옆에서는 힌두교 경전을
읽어도 부아가 나지 않았다. 해를 넘겨 고치고 있는 만화 앞에서도 평정심을 지켰다.
뭐든지 아주 늦게 깨우치고 만다. 반면 실수는 늘 근면하고 대범하게 저지른다. 내 몸은
겪을 수 있는 시행착오를 모조리 거쳐봐야만 직성이 풀리나 보다. 앞으로의 소설 또한
수많은 갯벌과 도랑에 처박힐 것이다. 동생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던 여름밤, 남의 집
주차장 셔터로 돌진해 굉음을 일으켰을 때처럼 작업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릴지 모른다.
단정하게 외출시켰다고 생각했지만 눈곱이 턱에 붙고, 손톱 밑에는 흙이 잔뜩 낀 소설이다.
몹시도 납작한 원고를 채택해 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전한다. 멀리 또 가까이 있는
지인들에게 새삼 애정을 전한다. 큰 자식이 밖에서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지는 모르오나
어찌 됐건 축복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어머니에게는 건강과 운이 오래 깃들길 빈다.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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