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과 로드킬 제로 캠페인을 하면서 작디작은 그림책 <길 위의 너>를 만들었어요.
A7의 손바닥 만한 크기입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3955
링크를 타고 가시면 다른 작가들의 연재물도 함께 보실 수 있어요.
모든 짐승들이 이 겨울을 무사히 통과하기를.
한 동물을 사랑하기 전까지 우리 영혼의 일부는 잠든 채로 있다._아나톨 프랑스
_평생 관광객을 태우다 죽은 60세 코끼리 사오나이(작은 소녀라는 뜻)의 장례식
사진 출처_Facebook(Boon Lott's Elephant Sanctuary-BLES)
도로 한가운데 죽어 있는 새끼 고양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차량들이 질주하는 길이었죠. 검고 뜨거운 땅 위에 밀려 붙어있는 주검은 작고 작았습니다. 털 뭉치와 얼룩은 이 당황과 통증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지요. 저는 그 어린 생명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몇 번이나 소리를 질렀는지, 낯선 도로에서 밤과 낮을 버티는 동안 어떤 마음이었는지 생각할수록,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은 운전자가 일부러 고양이를 죽인 게 아니듯 고양이의 유난한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 것도 아닙니다. 목격자인 도로는 말이 없고 길 위의 생명은 계속 죽어갑니다. 이 살인적인 속도는 언제부터 우리의 필수품이 되었을까요.
국토 면적에 비해 도로가 너무 많은 이곳에서 필연적으로 매일 벌어지는 사고가 있습니다. 동물, 길, 인간이 만나는 지점에서 누군가 죽는 일, 로드킬입니다.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망각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는 여기서, 우리는 보이지 않거나 작은 생명들의 안녕과 평화를 알게 모르게 손상시키고 있습니다. 애도와 사과가 없는 사회에서는 각자의 생존을 위해 세련되게 침묵하는 법을 익혀나가기 바쁩니다. 저는 이 악순환에서 가장 흔히 그리고 가장 먼저 희생되는 동물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전해보려 합니다. 그들의 말을 정확히 헤아릴 수 없다는 점에서 작업자는 문제투성이의 통역 또는 쓸데없는 번역을 하게 되겠지만 우리와 다른 언어, 다른 시간을 쓰고 있는 생명체에 대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우선 보잘것없는 짐작, 볼품없는 상상, 그리고 개인적인 추모뿐이었습니다. 도로 위의 교통사고를 방지하는 캠페인에서 저는 역설적으로 긴 도로, 많은 차량을 통해 사람들을 만납니다. 사는 곳에서 활동지까지 평균 2시간 54분, 198. 83km를 거쳐 로드킬 제로 캠페인을 벌이며 질문이 자꾸 늘어났죠. 주검을 찾으러 다니기 위해 자동차에 오르는 일은 태어나 처음이었고 갓길에 서서 과속차량들을 바라볼 때마다 귓가에 징이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_자료를 모아갈수록 앙상해 보이던 콘티와 초반 스케치
한 국가의 위대함은 그 나라가 동물들을 대하는 태도로 알 수 있다._간디
저는 아무도 안 시켰는데 소설이나 만화 같은 걸 만드는 일머리 나쁜 작업자입니다. 아직 고행 길의 초입로에서 헤매고 있고요. 현재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파견 작가들, 녹색연합, 남한산성 면사무소와 함께 로드킬 제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림책 작업을 구상하는 동안 저는 대상을 삵에서 길고양이로 바꾸었는데요. 기존 대상이었던 삵의 특수성이 오히려 회피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어요. 현장을 접하기 전에는 저부터 로드킬을 특별한 사고로 여기고 있었던 거죠. ‘나와는 먼 일인데? 좋은 캠페인이긴 하지만 삵은 한 번도 못 봤어.’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여겨도 무리가 아닐 거란 짐작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죽는 길고양이를 통해 로드킬을 말하면 어떨까. 대상에 대한 접점과 이해가 클수록 공감력이 깊어질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드킬 전체 발생률의 0.7%인 삵은 멸종 위기 보호종이기에 수집과 기록이 그나마 이뤄지고 있는 형편이지만 우리 주변의 흔한 길고양이는 서울시에서 로드킬을 가장 많이 당하는 동물이면서 멸종 위기종 곧 유의미한 개체의 상실로 취급되지 않기 때문에 로드킬 기록과 수집이 미비합니다. 동시에 한국에서 가장 천대받는 생명체이기도 하죠. 인간의 평균수명이 85세 전후라면 길고양이는 고작 2~3년을 힘겹게 살다 이 세상을 떠납니다.
_그림책 표지
만일 고양이가 말할 수 있다면 그들은 말하지 않을 것이다._난 포티
고양이는 주위에 대한 경계심이 짙은 동시에 인내심이 뛰어난 동물입니다. 통증과 상처를 티 내지 않기로 유명하죠. 그들은 주변 상황을 오랫동안 살피다 움직입니다. 그러나 길고양이는 자신의 발보다 자동차 바퀴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사실을 도로에서 홀로 깨닫고 맙니다. 자꾸만 모양이 변하는 구름, 마구 달려도 끝이 안 나던 초원, 까끌까끌하고 축축한 갈대밭, 단 한 번의 사계절, 같이 뒹굴던 친구들, 반짝이던 사탕 껍질, 왼발과 수염에 튀어있던 물방울, 새카만 밤, 재밌던 흙냄새, 유난히 좋아하던 당근의 기다란 잎사귀, 어둠 속에서 더 선명히 보이던 인가, 검은 물가, 푸른 새벽 공기, 엄마의 체취와 털의 감촉. 도로를 건너기 전에 죽은 대지의 거주자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딱딱하고 막막한 잿빛 땅, 발바닥에 모래가 한 알도 안 묻어 나오는 길, 눈이 멀도록 엄청나게 크고 빛나는 안광을 뿜는 맹수들, 천둥 치는 소리를 매달고 달리는 무정한 짐승들. 그들에게 도로와 자동차란 어떤 존재일까요. 짧은 삶을 사는 동안 그들의 의식과 무의식엔 어떤 풍경들이 담겨 있었을까요.
우리는 동물 대신 목소리를 낼 수 있다._동물 권리 선언 중
_그림책 내지 일부
한 마리의 길고양이가 밤의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는 뜬 눈으로 어지러운 생각에 휩싸입니다. 차에 타고 있던 소녀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죠. 28 페이지의 그림책은 생명이 죽어가는 시간 동안의 이야기로, 완연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이 사고가 한순간에 어떤 이의 전 생애를 황망히 종결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저는 로드킬이 행정절차 상의 문제 이전에 한 개체에게 닥치는 크나큰 비극이라는 사실, 이런 식으로 죽어도 되는 생명은 없다는 당연한 체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로드킬 모니터링을 나가는 내내 캠페인에는 물론 즉물적이고 강력한 구호들이 필요하지만, 동물 한 마리의 실체와 생애가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이야기 역시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품었어요. 이 마음에서부터 우리에게 도로가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한지, 우리는 왜 그렇게 빠르게 달리는지, 편의의 추구가 누군가의 생존 위에 자리할 수 있는지 물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작디작은 그림책 <길 위의 너>는 소녀가 그날의 길고양이에게 쓰는 편지이면서, 그날의 자신에게 쓰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편지가 당신에게 닿길, 그래서 당신도 조용히 답장을 이어 쓰는 시간을 맞길, 그래서 우리가 따로 또 같이 길 위의 평화를 보듬어가길 빕니다. 길 위의 네가 결국 나라는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요. 지구의 여행객 중 죽음, 슬픔, 상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생명은 없으니까요.
_크로키 모델이 되어 준 미세와 먼지, 둘 다 길고양이에서 지금은 동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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