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유리를 이고 눈길을 걷다 다치셨다. 허리와 골반 그리고 왼팔이 부러졌다고 했다. 전화로 "나쁜 소식이 있어"라고 운을 뗐는데 그 화법이 꼭 아버지가 평소에 좋아하는 할리우드액션영화의 대사 같아서 피식 웃고 말았다. 뼈가 붙을 때까지 식구들과 교대로 병원에 있어야 하니 이번 연말과 연초는 아주 조용한 겨울이 될 것 같다. 청렴하고 침착한 겨울이라니 조금쯤 좋다. 급성췌장염, 요로결석, 위궤양, 백내장, 디스크 같은 질환을 가족들은 차례차례 맞이하고 떠나보낸다. 응급실행 택시를 타거나 구급차에 오를 때면 시간이 후드득 부서지는 것 같지만 병원에 도착해 의사들의 흰 얼굴과 느린 말투를 대하고 있으면 초침은 천천히 나아가고 이곳 역시 지리멸렬한 혹은 더욱 지리멸렬한 공간이라는 걸 금세 깨닫게 된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