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유리를 이고 눈길을 걷다 다치셨다.
허리와 골반 그리고 왼팔이 부러졌다고 했다.
전화로 "나쁜 소식이 있어"라고 운을 뗐는데
그 화법이 꼭 아버지가 평소에 좋아하는
할리우드액션영화의 대사 같아서
피식 웃고 말았다.
뼈가 붙을 때까지 식구들과 교대로 병원에 있어야 하니
이번 연말과 연초는 아주 조용한 겨울이 될 것 같다.
청렴하고 침착한 겨울이라니 조금쯤 좋다.
급성췌장염, 요로결석, 위궤양, 백내장, 디스크 같은 질환을
가족들은 차례차례 맞이하고 떠나보낸다. 응급실행 택시를 타거나
구급차에 오를 때면 시간이 후드득 부서지는 것 같지만
병원에 도착해 의사들의 흰 얼굴과 느린 말투를 대하고 있으면
초침은 천천히 나아가고 이곳 역시 지리멸렬한 혹은
더욱 지리멸렬한 공간이라는 걸 금세 깨닫게 된다.
이제 다시 겸허할 시간이 찾아왔구나.
안녕. 간병의 밤들.
'접골원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월의 2일 (0) | 2023.09.09 |
---|---|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 (0) | 2023.09.09 |
충무로에서 만난 진호어머님께 참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네요 (0) | 2023.09.09 |
첫 KO승 (0) | 2023.09.09 |
아빠, 미안 (0) | 2023.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