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막내 동생이 도미한 지 꼭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주 화요일 인천공항에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음울하게 울고 있던 파란색 야상을 봤다면 그게 나일 것이다. 정작 그 애는 침착했는데 나는 코에 자꾸 와사비가 들이차서 의연할 수 없었다. 자그마치 4년을 못 본다. 동생은 수능을 발로 봤는지 국내대학에 모두 낙방하고 급히 쓴 자기소개서와 고교시절 내신기록을 통해 너무도 황급히 이곳을 떠나버렸다. 일이 이렇게 흘러갈지는 몰랐다. 과정과 절차가 4대강 사업과 진배없었다. 심지어는 수속도 빨랐다. 몇 마디 나눌 기회도 없이 우리는 간단히 분리되었다. 동생은 어정쩡하게 등이 굽은 자세 그대로 문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마침 그날 내 가방 속에는 박완서 작가의 소설집이 들어있었는데 유난히 미국병에 대한 소회가 많았다. "집안이 망하려고 미국바람이 들어서는" 같은. 어머니와 막내가 짐을 부치는 동안 그 구절을 떠올리자니 목근육이 굳어갔다. 공항의 천장은 무척 높았지만 실내는 갑갑하기 짝이 없었다. 동생에게 입국목적을 비자와 다르게 말하라고, 그러면 격리조치 된 후 한국에 머물 수 있다고, 미국에 5년간 들어갈 수 없다고 칭얼대봤지만 나도 걔도 허망한 농담인 걸 잘 알아서 잠시만 피식 웃었다. 막을 수 있는 방법도, 다시 생각할 시간도 깨끗이 없었다. 동생 배낭에 관촌수필을 넣을까 했는데 양장본이 꽤 무거워서 백석의 시집으로 바꾸었다. 아마 읽지 않을 것이다.
2. 배웅을 마친 이튿날부터 일거리를 받아 며칠간 야간작업을 했다. 하루에 세네 장씩 근대여성들을 그려나갔다. 자료집 8권과 린씨드오일냄새와 과열된 노트북과 콩테 가루 속에서도 나는 전혀 지치지 않았다. 그보다 작업이 완료되자마자 바로 입금이 되어 오호츠크해춤을 출 만큼 기뻤다(사주진단 뿡뿡!) 유야무야의 관례라고 해야 할까. 화료는 대체로 출간 후에 지급되곤 해서 출간이 더뎌지면(또는 누군가 결제 건 자체를 망각하거나 일 자체가 엎어지면) 작업자는 무한정 대기를 하게 된다. 움직이고 생활하고 생명활동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심정의 어느 부분은 딱딱하고 찬 망부석이 되어있다. 잔고를 떠올릴 때마다 순간 동작이 멈춘다. 너무 바쁜 편집자, 과업무에 시달리는 디자이너(편집자와 디자이너 앞에 '한가한'이라는 수식이 붙기도 힘들지만)와 함께 일을 하게 됐을 때는 프로젝트의 흐름과 변동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공유하기도 어려운데
나쁜 경우 헛수고를 하게 된다. 짧고 급한 통화로 혼자 일의 덩어리를 더듬어가야 할 때도 있다. 탐구심과 균형감을 작위적으로라도 세워놓지 않으면 마감격랑에 만신창이로 휩쓸리기 쉬운 것이다. 매회 자립심과 겁이 같이 자란다. 이 구조공포를 점차 어떻게 다뤄나가야 할까. 시간은 점점 모질어질까.
3. 예능 프로에서 들리는 "나만 아니면 돼!" 이 소리가 몹시 끔찍하다. 어느 전직앵커는 이 추위에 체념을 얹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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