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술차트

주부학교

접골 2023. 9. 6. 22:29

주부학교 2-3

종이 위에 목탄

교실에는 아주 어린 시절 끌려가곤 했던 기도원 냄새가 풍겼다. 첫 수업은 백일장이었다. 글감으로 '나의 인생, 식탁에서, 한강, 등산, 감'이 나왔다. 길고 낡고 좁다란 책상 위에서 모두들 골똘히 글을 지어나갔다. 팔짱을 끼고는 한 글자도 적지 않는 사람과 몇 번 눈이 마주쳤다. 색바랜 블라인드가 바람에 몇 번 서걱였다. 그 결에 옅은 지린내가 실려왔다. 각자의 책상 위로는 제주 삼다수, 소형 보온병, 생밤, 술떡, 위장개선음료 따위가 놓여있였다. 나는 팔을 괴고 그들의 난해한 옷감문양, 등산복의 재질, 속옷 와이어로 눌린 옆구리살, 가파른 통굽의 높이, 색소과다의 루즈빛깔, 푸르게 변색한 눈썹문신자국, 파마기로 거의 해지다시피한 머리카락, 금붙이류의 크고 굵은 악세사리들, 옆 사람의 기미와 분가루, 나이와 비례하는 손등의 옥색 정맥 굵기, 저마다의 감자같은 손, 큰 판형의 교과서 몇 종, 안경을 끼지 않은 사람, 파마를 하지 않은 사람, 안경도 파마도 하지 않은 사람의 수 등을 헤아렸다.

 

작업 시간 내내 나는 타인으로 있었다. 카메라로는 자꾸 뒷모습만 찍혔다. 학교 앞을 서성이면서, 이따금 다가서려는 자세 이면의 오만, 좀처럼 다가서지 않는 자세의 안이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 모두가 희미하고 초라하다고 느꼈다. 계절이 바뀌고 불면과 소매길이와 새치가 늘어나도 세상의 빛은 자꾸 엇비슷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타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익명성에도 온도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만은 조금쯤 올랐다고 쓰고 싶다. 그게 어떤 대상을 관찰할 때 필연적으로 생기는 애정이거나 인간 각각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대신 멀리서 인간군을 관망할 때 생기는 온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 긍정의 근원을 잘 모르겠지만. 멀리 있는 사람만을 그저 함부로 좋아하는 나의 비루한 천성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짝사랑을 절대 발설하지 못하는 16세처럼, 부동의 자세로 무엇이든 상상하는 17세처럼, 그들을 향한 뜨거운 무관심을 통해 누군가가 그 익명성의 온도를 알아채준다면 좋겠다. 길을 걷다 본 듯한 그들을 당신이 여기서 만난다면 더욱 좋겠다.

*볼로냐 도서전 출품 때는 아래 글로. 제목도 '여학생들'로 바꾸었습니다.

한국에는 주부학교란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배움의 시기를 놓친 사람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학생시절을 겪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종종 창피한 비밀처럼 여겨집니다. 마음에는 끈끈한 응어리가 생기구요. 그래서 못 배운 게 ‘한’이란 강력한 표현을 하죠. 한이란 것은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을 뜻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학교. 너무 늦게 온 소풍과 숙제.


당신은 학교에 간 첫날을 기억하세요?


유년시절을 다시 살아내는 주부들의 얼굴은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그 표정은 울면서 웃거나 웃으면서 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감정이 그림을 잠시만이라도 통과해갔으면 좋겠습니다.

 

School Girls

 

In Korea, there is a special school called "Housewives’ school".

It is a place for the people who missed their opportunities to learn early in life.

 

Not having the experience of school days and knowing that they could not learn are often kept as embarrassing secrets among the students. The secrets create bitter resentments in their hearts. For this reason, the bitter resentments toward what they could not learn are all summed up in a very strong word, "han(sorrow)". The word is used in situations that demand strong bitterness, sadness and resentfulness.

 

The first and the last of school days. School trips and homework that came too late in life.

 

Do you remember your first day at school?

The faces of the housewives, who were re-living their childhood, seemed rather crowded with tangled emotions. Their smiles almost seemed as if crying, as their crying faces seemed as if smiling at times. I hope the painting could portray such expressions of emo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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