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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 제목 전시를 위해 그림일기 몇 장을 그려내고 있을 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저자의 양해를 구할 것도,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것도 없어 참 좋겠네. 그런데 말이다. 10대와 20대 사이, 지난날의 본인 일기를 들추어 보고 그걸 다시 한번 옮겨 적는 일이 이렇게 부박하고 남루할지는 몰랐다. 실패한 날, 조금 더 실패한 날, 완전히 실패한 날이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고 있는 나의 일기장. 불운이 감수분열하는 하루하루. 우습고 조악한 나날의 표현에는 자연스럽게 콜라주가 따라오게 되었다. 그것이 감정의 파편을 돕기도, 감정의 무거움을 경량화시키기도 했다. 작업 자체가 자가진단을 통한 미술치료랄까, 거울기법이랄까. 그리고 싶은 풍경은 매번 납작하고 물기 없는 형태로만 드러나지만,..

시술차트 2023.09.06

그리면서 놀자

한 번도 못 본 아이가 이 책으로 놀 생각을 하면 기분이 기묘하네요. 약간의 의견차로 초반의 그림과 사뭇 다른 버전이 몇 됩니다. 그래도 우려보다 책이 선명하고 깔끔하게 인쇄됐어요. 언젠가부터 어렴풋이 글과 그림이 있는 책을 만들고는 싶었지만 놀이북 형식이 첫 타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사실 아직도 저의 아이덴티티와 이 결과물의 갭이 감당이 안 돼요. 객관적인 작업일지를 써보고자 했는데 일단은 이렇게 주절주절 얘기만 늘어놓습니다. 보고 싶으면 직접 전화하면 되지!라고 한 친구가 놀라운 조언도 해줬지만 너무 늦은 새벽이니 오늘은 이렇게. 오늘도 이렇게. ps. 극진하게 보조를 맞춰주었던, 미진한 작업을 유려하고 현명하게 빼내 준 빛에게 감사. 완강했던 거절 의사를 고도의 화술로 아작 내어 준 에디터..

시술차트 2023.09.06

상상의 휘모리

주말 밤 을지로에 들러 영화와 공연을 봤어요. 아이디카드를 가방 안에 넣어 뒀다가 막상 집에 와서는 이렇게 굳이 사진을 찍고 다소곳이 올려도 봅니다. 서울독립영화제: http://www.siff.or.kr/ 그간 그려내던 어정쩡한 아이들이 자꾸 눈에 밟혔어요. 디자이너를 잘 만나 고운 때깔로 피어났지만 근본은 모두 어두침침한 자식들이었거든요. 야간 작업실 희미한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모나미 유성 매직으로 태어나던 녀석들. 부디 잘 지내거라. 언니는 울지 않을 테야. 저는 이제 다시 쉬게 되었어요. 겨울은 깊어가는데 잔고는 얇아져가고 작업실 입주비 이 달 치까지 냈는데 관리자분이 잘못 아시고 달라하셔서 순간 피가 차갑게 식기도 하고. 하하. 그래도 이번 겨울은 또 무심히 지나가주겠죠. 그 무심함이 순간순간..

시술차트 2023.09.06

인디파르페

위_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패러디. 연필과 샤프펜슬과 자연목탄으로 드로잉. 지금 보니 왼쪽 눈은 완선이 언니의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눈동자. 아래_ 물감으로 펜으로 며칠씩 그려나가다 결국 낙서했던 걸로 나왔;; 한 장면에 로맨스, 호러, 액션을 넣어야 한다고 해서 몹시 곤혹. 앞으로는 경직되지 않고 즐겁게 후리하게 그려보아야겠습니다.

시술차트 2023.09.06

백년간의 낯선 여행

겨울까지 전시해요. 생각나면 와서 봐요. 아직 안 가봤는데 직접 보면 꽤 부끄러울 듯. 위에서부터 포스터, 길 위에 선 여인들 전시 패널, 배너들, 리플릿과 봉투입니다. 목탄으로 그렸고 먹으로 그린 두 번째 포스터는 아마 인쇄되지 않을 거예요. ps. 창파씨와 빛과 짧게 만난 연구원분들. 나는 잠깐 끼어든 것만 같아요. 너무 고생하셨어요. 뜨겁고 명민했던 모습 모두가 오래도록 힘이 될 거예요. 추진력이 무엇인지 사람을 존중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봤어요. 오래오래 좋은 기획을 꾸려 나가시길 빌어요. 건강하세요. ps2. 너무 오래 못 봤던 친구들. 미안해. 홍대 말고 네가 있는 곳으로 불러.

시술차트 2023.09.06

궤도, Life Track

영화를 보고 가슴이 캄캄해졌어. 무엇을 그리든 결국 훼손일 것 같아서 작업으로 끌어내리기 꺼려졌는데. 그런 상념은 금세 휘발되고. 쫓기듯 그리고 보내고 기다리고. 손을 떠나자 다시 영화를 보고 난 직후의 기분으로 돌아왔네. 배우가 다시 한번 처참해하진 않을까. 그림으로 뭘 한 걸까. 이런 생각 그만둘까. 인쇄물을 보고 잠깐 좋았다가 바로 주춤주춤. 포스터와 관계없이 영화 권하고 싶어. 단관개봉인 게 아쉽다. 좀 많이 휘청였어. 희망 따위 한 줌도 없어. 청결한 절망이었어. 멀어져 가는 새하얀 등. 무력과 무력과 무력에 대한 필름. 목탄과 검은 펜. 완성된 그림 하나가 포스터로 나왔으면 했는데 클라이언트와의 조율로 A컷, B컷 두 그림이 합성된 형식. ps. 큰 이미지와 보도자료. 하지만 일단 참 기쁘다...

시술차트 2023.09.06

화판 밖으로 나온 첫 그림

가운데 새끼 호랑이를 빼야 했는데 어쩌다 결국 실려서 혼자 마음이 아픕니다. 아! 상관도 없는 호랑이 자식. 원고를 읽고 작업하지 않은 괴이한 절차였어요. 있는 그림 몇 점에서 편집자님이 골랐습니다. 이 역순의 방식 때문에 책 나올 때까지 ㄷㄷㄷ 홍대 하나은행 앞에서 퀵아저씨를 절절히 기다렸던 한겨울 그날이 다시 떠오르네요. 덕분에 책은 바로 완독을 했습니다. 산도스지 위에 수채와 색연필. 표지버전의 색은 원본과 퍽 다르고 이미지 몇 컷은 반전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시술차트 2023.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