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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의 나라

국가는 파산하고 국제기구는 힘을 잃었다. 땅은 나뉘었고 돈 될 만한 것들은 모두 팔려 나갔다. 지켜줄 이 없는 섬은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을 내다 팔았다. 그렇게 섬은 초국적기업의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이 되었다. “섬사람들은 언젠가부터 각자의 질병을 이름 대신 불렀다." 방사능 폐기물에 대한 대가로 섬은 구호물자를 받아들였다. 통조림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사이, 섬은 빠르게 죽어 갔다. 예정보다도 더 빠르고 거칠게. “새로운 세대 중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는 생명이란 없었다." 절망 속에서 멸망해 가는 섬에서 '사마귀'와 '반점'은 서로를 발견한다. 그들이 그리는 세계는 연약하고 금방 부스러질 것만 같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고 의미를 찾는다. “세상에 끝이 온다 해도 좋아. 너와 나는 헤어지지 않을 거..

시술차트 2023.09.08

식목일에 나온 책

그들의 고뇌와 사랑을 현재에 대입할 수 있을까? 윤동주, 김동인, 김영랑, 박태원, 손창섭의 청춘들이 재탄생하다 1930~1950년대 해방 전후 시대 문학 속 인물들은 새로운 삶에 대한 전망을 결여한 채 어둡고 침통한 현실의 밑바닥에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그런 현실 속에서도 배어나는 푸른 봄날(靑春)의 기운과도 같은 파릇한 생기와 인간애의 모습을 포착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젊음이라는 응축된 그들만의 에너지 때문일까, 해방 전후 시대에서나 현재의 수많은 정보 시대 속에서나 젊은이들은 쉽게 좌절하고 상처받는다. 그런 모습들은 안타깝지만 어쩐지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인간의 모습인 것 같다. 그렇게 인간의 ..

시술차트 2023.09.08

순회전 여학생들

여관, 지하철에 이어 회관에서 하는 세 번째 개인전. 쌈지와 볼로냐에 데려갔던 주부학교 학생들을 재소환해 순회전으로 갑니다. 예전에 기획한 손바닥 노동이야기는 내 손바닥 이야기로 확장해 참여프로그램으로 가요. 이건 뭐 사골도 아니고 우려먹기 대잔치!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는 한국 중년 여성들의 모습. 그 속의 재생성과 활력 그리고 엄청난 현실감각. 저는 그 복잡한 운동성이 슬프고 재밌어요.

시술차트 2023.09.08

후기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났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부엌을 돌며 감자와 팥과 오리를 삶았다. 나는 집에서 나갈 줄을 몰랐다. 뒤늦게, 짧게 자른 머리카락이 폭서의 큰 요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거울을 보니 뒷목과 이마를 검은 머리가 수북이 덮고 있었다. 더위가 끝물에 이르러서야 도서관이 피난처의 꽃이자 성지임을 깨달았다. 냉각기 옆에서는 힌두교 경전을 읽어도 부아가 나지 않았다. 해를 넘겨 고치고 있는 만화 앞에서도 평정심을 지켰다. 뭐든지 아주 늦게 깨우치고 만다. 반면 실수는 늘 근면하고 대범하게 저지른다. 내 몸은 겪을 수 있는 시행착오를 모조리 거쳐봐야만 직성이 풀리나 보다. 앞으로의 소설 또한 수많은 갯벌과 도랑에 처박힐 것이다. 동생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던 여름밤, 남의 집 주차장 셔터..

시술차트 2023.09.08

한국만화박물관 탐방기

불볕 여름날의 청탁 원고. 편집된 잡지버전 대신 취재원본을 올려봅니다. 인쇄물에 새겨진 자장면이란 단어가 마음 아파서. 허허. 칸 밖으로 나와 말을 거는 친구들이 있는 곳_한국 만화 박물관 만화, 아름다운 생명체_ 요 근래 일기예보는 꽤 정확한 편으로 탐방 당일, 불볕더위 소식 역시 거짓이 아니었다. 폭염 속에서 기상청의 진심 어린 조언대로 자외선 차단제를 얼굴에 덕지덕지 문댄다. 불길한 흑백만화의 불우한 조연처럼 보이는 사람이 거울에 서 있다. 밀반죽 같은 낯으로 버스에 올라 새삼 만화를 생각하자니 어쩐지 기묘한 심정. ‘만화나 그려라, 만화 같은 상상하고 있네, 너 만화 그만 안 봐?!’ 실제로 만화 나부랭이나 그리고 앉아 있는 나에게 이런저런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깟 편견 정도야 이제는 김장철..

시술차트 2023.09.08

야광도시

안녕. 여름 같은 봄이에요. 어떻게 지내나요. 두 번째 개인전을 열어요. 여관에 이어 지하철에 그림을 둡니다. 충무로역 지나칠 일 있으면 잠깐 얼굴 봐요. 전시관은 역사 내에 있어요. 오가는 어르신들이 박접골, 이라는 이름을 낯설고 불편하게 여겨 전시를 아예 안 볼까 봐(허허) 이번엔 본명으로 띄워요. 친구 아버님이 "웃기려고 이름 그렇게 지었나? 요새 사람들은 그런가 보네" 하셨을 때 푹 웃었지만, 이름 때문에 진입부터 묘한 벽이 생기는 것 같아 아쉬웠거든요. 앞으로도 장소성에 맞게 접골과 본명을 오가려해요. 더 친근한 이름은 접골이지만. 약 50점 정도의 그림을 붙였어요. 흔히 폼보드라 부르는 폴리에스테르판이 주재료였고 처음으로 크게 그렸어요. 처음으로 인물들이 덜 나와요. 크고 판판한 곳에 서서 그..

시술차트 2023.09.07

묘책

두 권의 만화책을 내놓기 위해 겨우내 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 묘책은 제일 먼저 원고를 마감했다는 벌로 표지를 맡았습니다. 저의 14p 단편은 아래 축소판으로 모두 늘어놓을게요. 작업자 아홉 명의 만화 열 편이 담겨있고요. 가격은 팔천 원입니다. 한국만화계의 기린아들을 후원해 주실 분들은 살짝쿵 반응해 주세요. 1588 마나마나 1588 가능한 직접 배송해 드리려고 합니다.

시술차트 2023.09.07

24h 만화책

구질구질한 후기_ 만화가를 배우자로 둔 동료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미지로는 뭐든 하려고 해. 단, 만화는 빼고. 절대로! 빼고. 그때 저는 만면에 염화미소를 띠운 채 왜?라고 해맑게 물었던가요. 현장에서 즐기자는 마음가짐으로 당일까지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고 도착했지요. 하지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작업의 시작과 동시에 저는 지옥행 급행열차에 올라선 듯했습니다. 자정이 돼서야 글을 매듭짓고, 거기 붙일 그림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새삼 절망. 칸을 분할하고 장면을 연출하고 대사를 배치하는 만화적 작업을 저는 엄두도 내지 못했지요. 만화가 신성한 노가다,라는 생각을 24시간 동안 십이지장으로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쾌적하게 감상했던 만화의 저자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현재 작업의 상태는 ..

시술차트 2023.09.07

일곱 번째 방

여관에 조촐히 작은 개인전을 열었어요. 지나는 길 창문이라 24시간 볼 수 있습니다. 적적한 밤 편의점에 튀김우동 사러 가는 기분으로 들러봐요. 이불속에 제가 있으니 혼자가 아닐 거예요. 정차식의 노래를 들으며 걸어와도 좋아요.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나온 후 몸을 반대로 틀어야 해요. 아래 약도 붙일게요. 일곱 번째 방 박접골/ Bonesetter Park/ 朴接骨/ 설치와 회화 2011_0917▶2011_1007 통의동보안여관 창문전시(Window Gallery) 돋보기, 알약, 동전에 아크릴채색 1. 나는 내가 지구 우에 살며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지구가 질풍신뢰의 속력으로 광대무변의 공간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참 허망하였다. 나는 이렇게 부즈런한 지구 우에서 현기증도 날 것 같고 해..

시술차트 2023.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