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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_막스 베버

프롤레타리아들이여, 일하고 또 일하라, 사회적 부와 너 자신의 개인적 가난을 증대시키기 위해. 일하고 또 일하라, 더 가난해지기 위해. 일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으니 일하라. 그러면 그만큼 더 비참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생산의 헤어 나올 길 없는 법칙이다. _폴 라파르크,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중 급작스럽고 전투적인 문구로 보이지만 다시 보면 별달리 충격적일 것도 없다. 자본주의는 그저 공기 같은 것이 된 지 오래다. TV 앞에 앉은 사람에게 광고(차승원이 이번 아사히 모델이야?)와 전쟁소식(미국이 또 어딜 친다고? 헐. 그러지 말지.)과 리얼 버라이어티쇼(유재석 엄청 잘 뛰네.)가 두 눈 위로 평온히 흘러가는 일처럼 우리는 무수한 자극을 비슷한 무게와 가치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하물..

흡연실 2023.09.10

자기기만의 방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_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 중 이곳에서 많은 것이 부풀었다가 사그라들었다. 절차는 언제고 비슷했다. 비닐과 스티로폼이 굴러다니는 작업실은 천진하고 아름다웠지만 캄캄한 바람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캄캄한 공기를 많이 마시면 폐가 나빠진다고 죽은 사람이 말해주었다. 봄비가 표독스럽게 내렸다. 언 배를 타고 하염없이 같은 곳을 맴돌고 있어. 현기증이 나. 단단하고 딱딱한 것을 줄 수 없니. 나는 나에게 권유한다. 그런 것이 있긴 하지. 청산가리와 꽃나무와 삼치. 일기장엔 괴이한 문답이 쌓여가고 봄은 겨울보다 추워진다. 동전으로 담배 값을 한참 동안 모으다 누군가 소리쳤다. 너무 추워. 너무 춥다고. 너는 이 추위가 안 느껴져? 누군가는 ㅁ으로 누군가는 ㅇ으로 방향을 정했..

흡연실 2023.09.10

미션 클리어

동인천에 가서 짜장면(자장면 X)을 먹고 오기! 그게 오늘의 숙제 소림사 무술권법으로 수타면을 뽑아내는 남자를 찾아서 견출지에 제일 작게 적힌, 제일 싼 메뉴를 소신껏 주문하기 면을 다 씹기도 전에 테이블로 걸레가 날아와도 점원과 싸우지 않기 현금이 없으니 카드의 마그네틱선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하기 1호선에 올라 아침부터 슬픈 사람들을 통과하기 불에 잘 타는 소재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만화책을 펼치기 검은 들깨 엿을 녹여 먹으면서 졸음을 물리치기 차이나타운 문화의 거리에서 500원짜리 사진을 찍기 비록 출력은 안되지만 천안문을 배경으로 선택할 수 있음 식사를 마친 후에는 요구르트 한 줄을 사서 햇볕으로 가기 공원을 한 바퀴 돌고 경인상사에서 만든 운동기구를 타기 손뼉 소리가 희미한 할아버지를 너무 오..

흡연실 2023.09.10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가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영화 얘기를 쓰고 싶진 않다. 아주 오래전 어느 새벽에 광주에서 본 필름. '추위는 확실히 악의를 품고 우리를 지나갔다'였을까. 가끔 떠오르는 그 대사. 느리고 끈질기던 영상. 서사는 모두 휘발하고 가뭇가뭇한 잔상만 남았다. 홍대에서 대방까지, 대방에서 홍대까지 자전거를 타면서. 서강대교와 원효대교를 달리면서. 오늘의 하늘이 이런 빛이었다. 포스터의 글씨를 모두 지우고 풍경만을 오래 보고 싶다. 쓸쓸하고 풍요롭게. 앙상하고 따뜻하게.

흡연실 2023.09.10

이 사진이 그나마 나아서

2019 SF어워드 장편소설 부문에서 지상의 여자들로 우수상을 받았어요. 소감을 말할 때 오늘이 생일이라고 하니 다들 손뼉 쳐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혼파망의 겨울 속에서 축하와 격려를 전해주신 분들. 늦었지만 고맙습니다. 그리고 여기 쓴 말이기도 하지만 https://sfaward.kr/29 누구보다 감사한 건 책을 읽어주신 분들. 구주에 들러 준 독자분들께 깊이 고맙습니다.

접골원일지 2023.09.10

이너프

한 달 만에 올리는 소식이네요. 이번 책 3n의 세계는 비공식적으로만 조용히 알렸는데 그건 이 작업을 혈육 포함 최측근 지인들이 모르길 원해서였어요. (친인척분들은 여기서 본 내용을 말하지 말고 잊어주시길) 엄마에게 전화가 왔고 몇 시간 통화를 나눈 뒤 게시글을 씁니다. 출간을 영영 비밀로 하려던 게 얼마나 허술한 미봉책이었는지 생각해요. 엄마는 불쑥 제 이름을 검색해 보고 '얘는 왜 책이 나왔는데 말도 안 해, 참나' 하곤 신간을 구입해 끝까지 읽어봤다고 해요. 엄마뿐 아니라 아빠와 동생도. 누가 말을 깨야 할지 모를 정도로 긴 침묵이 지나고. 엄마의 첫마디는 아무것도 몰라서, 어른들이 멍청이라서 미안하다는 말이었어요. 그 새끼는 누구냐, 그 자식은 어떤 놈이냐, 마구 따져 물었다가 제가 2.7kg으로..

접골원일지 2023.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