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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영역

중편소설 사마귀의 나라가 SF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을 받았어요. 당연히 다른 분들이 받을 줄 알고(듀나, 김보영, 김창규, 김용준 님이 후보군ㄷㄷㄷ) 진심으로 혈액순환에 좋은 손뼉 치러 나갔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읽어주신, 읽어주실 분들 모두에게 깊이깊이 감사드려요. 결단코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한 적이 없지만, 기본기가 1기가만 돼도 좋을 것 같지만, 충전해서 또 다음 작업으로 만나 뵐게요.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헤헹.

접골원일지 2023.09.10

대다나다!

조그만 단편소설 공모전에 원고를 내봤는데 뽑혔다. 수상자는 10명이고 책은 9월 초에 나온다. 제목은 파경-_-;; 여러 이유로 직계가족이 절대로 읽으면 안 되는 소설이라 당선되고 아무에게도 말 못 함. 유캔펀딩을 통해 후원금을 마련한 프로젝트로 작업자 한 명당 받는 상금은 얼마 안 되지만 책출간, 기념품, 시상식 등의 부대행사까지 치를 수는 있게 되었나 보다. 일종의 프러스 마이너스 제로 잔치인데 나는 이 방식이 나쁘지 않은 게 가난이 오랜 친구 같아서인가... 결론은 기분 짱짱맨!

접골원일지 2023.09.10

저녁이 없는 삶

0. 회의 중에 누군가의 전화벨이 울렸다. 소리가 컸고 잠잠해질 기미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입을 다물고 하던 얘기를 억지로 이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그 소리가 신경 쓰여 도무지 안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누구지. 참 무안하겠다. 근데 왜 안 받지. ... 참나. 왜 아직도 받질 않지. 도대체 뭐지. 뭐긴 뭐야. 오늘 내 알람 소리-_- 눈도 못 뜬 상태에서 급히 알람을 지우며 혼자 멋쩍었다. 요새 계속 이런 식으로 깬다. 재정상태가 급격히 열악해져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저녁의 생선요릿집에서. 비 오는 날에는 왜 창의적이지 못하게 다들 얼큰한 국물만을 떠올리는 것일까. 이번 태풍에도 사람들은 비바람을 무릅쓰고 자리에 가득가득. 1. 곧 마쳐야 하는 이번 만화의 한 꼭지. 그림보다 글자 붙이는 게 ..

접골원일지 2023.09.10

당신에게 투표하세요

어제는 투표를 하지 못하는 꿈을 꿨다. 봉고차에 실려 어딘가로 계속 달려갔고 투표소와는 자꾸 멀어지고 해가 저물어갔다. 중간에 네바다 같은 모래부지에 내려졌을 때 나처럼 투표를 못해 불안해하는 여자와 2만 원을 모아 택시를 잡아탔다. 꿈에서 깨고 구체는 모두 흩어지고 일어나 계란찜을 만들어 먹으면서 아침은 점점 선명해졌지만 황망했던 감정만은 아직도 부서지지 않고 잘 남아있다. 얼굴이 흰 그 여자의 조급도. 11일에는 해가 지기 전에 도장을 찍고 나와야지. 결정은 이미 해뒀다. http://www.youtube.com/watch?v=rMQ-frSHeNU&feature=player_embedded

접골원일지 2023.09.10

2월 1일

1. 예술은 노동의 날들을 침해하지 않는 쓸모없는 단 하루의 창조로 남는 것이 아니라, 6일이자 7일이며 31일이고 365일인 모든 날들에 쓸모 있는 눈앞의 물건들을 지우며 그들이 부단히 다른 존재들로 바뀌는 사랑의 활동을 함께 살고 겪는 것이다. 그 활동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예술의 적요한 고독이 아니라 추락하는 '너의 손바닥'들이다._진은영, 심보선 발문 중 2. 새벽 세 시 반에 깡깡 얼어붙은 작업실 변기를 깨며 생일을 맞았다. 3. 나는 아주 어릴 적에 내가 가졌던 공포와 낯섦의 세계로 돌아가고 있다. 내가 박약아가 되는 데에 서른 해가 걸렸구나. 자신을 충분히 입증하는 데에. _이수명, , 서른 중 ps. http://vimeo.com/17971843

접골원일지 2023.09.10

늦가을 여기

쪽문으로 놀러 오는 동네 고양이 중 제일 시니컬하고 조숙한 변발이. 요새 사춘기인지 형제들이 나뒹굴고 놀 때 무시하고 주위를 빙 돌아 혼자 걸어간다. 어미 장고. 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오밀조밀. 있을 건 다 있다는 화개장터 작업장. 두 시간 걸린 손글씨. 조심조심 쓰다 보니 막상 표어가 무색. 어여쁜 우리 동네. 이날 다른 곳 벼룩시장에서 배추전을 파느라(한 장에 천 원, 백장 부치고 3일 기절) 참석하지 못했다. 아. 여기서 꼭 '떡뽑기'를 뽑고 싶었는데. 다음엔 가야지. 싸고 좋은 알짜배기 시장. 추워지기 전에 놀러 와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미 추워졌으니 아무 때나 와요. 커피 내려줄게. 파스타 해줄게.

접골원일지 2023.09.10

알 수 없는 일들

1. 경기도에 새 작업실을 구했다. 올해 여름은 말벌, 쥐며느리, 공벌레 수천 마리와 함께 난다. 며칠간 장판을 걷고 벽지를 뜯어내고 금이 간 곳곳을 시멘트로 메꾸고 물청소를 했다. 앞으로는 중고매장을 돌며 책상과 의자와 소파를 구하고 페인트를 칠해야 한다. 집에 관해 아무 관심도 없는, 아파트로 옮겨 산지 15년이 넘은 집주인은 세입자가 알아서 재량껏 지내길 바라고 있다. 개척정신 돋는다. 정을 들이기 시작하자 무섭도록 능숙하게 허들을 넘고 있다.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이러다 콜럼버스 되겠네. 2. 마라톤 참가 이후로 만화동호회와 독서모임에 가입했다. 알량하기 짝이 없는 단 하루의 개인 운동회였을 뿐인데 이 경험이 나의 의욕과잉분비선을 잘못 건드린 것 같다. 3. 모아둔 적금 안에서 대출을 받..

접골원일지 2023.09.09

5월의 개

오늘 낮에는 광화문에서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유학을 가 있는 어린 동생을 위해 이런저런 도서를 구해야 했거든요. 해가 내리쬐는 한낮에 잿빛 스웨터를 걸친 저를 보고 어머니께선 너는 예의가 없으며 세상을 잘못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철야예배라도 나가 전심전력 기도할 것을 권하셨습니다. 경기로 이사를 간 뒤부터 날씨를 체득하는 일이 몹시 어려워졌습니다. 오전만 해도 옥상에 서서 강풍에 시달렸습니다. 바깥이 여전히 추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대로 한복판에 있는 분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검은 콩국수와 비빔냉면엔 누군가 사카린을 들이부은 것 같았습니다. 우울함을 유발하는 단맛을 없애기 위해 냉면에 식초를 쏟아봤지만 미지근한 면발 사이로 날치알 같은 기포가 조금 차올랐을 뿐 맛은 ..

접골원일지 2023.09.09

조잡한 유기체

1. 몇 번의 이사를 통해 내가 얼마나 무서운 집적형 인간인지를 깨닫고 있다. 대학시절의 서류들만 몇 박스인지 모르겠다. 다시 안 볼 책들도 참 많이 샀다. 목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쓰고 견고한 짐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생각난 듯 당근주스를 한 잔 마시고 연속극을 보면서 방의 짐이 증발되어 있길 빌었지만 -_- 문을 열면 각종 파일과 비닐과 박스가 계속해서 객관적으로 쌓여있다. 라디오를 켜 놓고 몇 명의 디제이들을 만나면서 '우선 눈에 안 보이게 하는 데'에 반나절을 소비했다. 아버지의 일기장 몇 권을 찾은 것이 짐정리의 주요 수확. 2. 이사 전에 마라톤 신청을 해둔 게 화근이 되어 짐을 방치해 둔 채 뛰러 나갔다. 두 시간 정도만 달리는 거야. 껌이지. 씁씁 후후!! 하지만 실제체력은 시궁창. 걷고..

접골원일지 2023.09.09

3월의 2일

1. 막내 동생이 도미한 지 꼭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주 화요일 인천공항에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음울하게 울고 있던 파란색 야상을 봤다면 그게 나일 것이다. 정작 그 애는 침착했는데 나는 코에 자꾸 와사비가 들이차서 의연할 수 없었다. 자그마치 4년을 못 본다. 동생은 수능을 발로 봤는지 국내대학에 모두 낙방하고 급히 쓴 자기소개서와 고교시절 내신기록을 통해 너무도 황급히 이곳을 떠나버렸다. 일이 이렇게 흘러갈지는 몰랐다. 과정과 절차가 4대강 사업과 진배없었다. 심지어는 수속도 빨랐다. 몇 마디 나눌 기회도 없이 우리는 간단히 분리되었다. 동생은 어정쩡하게 등이 굽은 자세 그대로 문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마침 그날 내 가방 속에는 박완서 작가의 소설집이 들어있었는데 유난히 미국병에 대한 소회가 많았다..

접골원일지 2023.09.09